커뮤니티

다시 찾아야 할 보물 무심천 남석교 5부

2025-05-08

문화 문화놀이터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다시 찾은 보물]
다시 찾아야 할 보물 무심천 남석교 5부
'다시 찾은 보물 - 청주의 문화유산'

   ‘다시찾은보물’은 2023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다음세대 기록활동]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시리즈로 청주의 문화자원을 6개 테마로 구분하여 글, 그림, 사진으로 엮은 책입니다. 문화유산, 역사인물, 숲길산길, 예술인, 교육유산, 미래유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 편에서는 ‘1권: 문화유산’을 게재합니다. 
Cheapter10-5. 다시 찾아야 할 보물 무심천 남석교
   현재 남석교는 완전히 지하에 매몰되어 있어 맨홀 뚜껑을 열고 들어가 하수구 벽에 조금 들어난 일부를 볼 수 있을 뿐이다.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해 보니 오랜 세월 행인의 발길에 닳고 닳아 반들반들해진 청판돌, 청판돌을 받치고 있는 멍에, 가석 위에서 청판돌을 고정하기 위한 장귀틀, 하상에 대석을 놓고 세운 3열의 돌기둥, 그리고 제방에 축조된 교두보 등 모든 석재들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남석교의 형식은 가구식 구조인 판교(板橋, 널다리, 보다리)로 제방에 5단 높이(182cm)로 석축하고 하천 바닥에는 68×52cm 크기의 대석을 놓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대석 위에는 3개의 석주(교각)가 세워져 있으며, 그 형태가 양쪽의 석주는 위쪽 폭이 49cm, 아래쪽 폭이 70cm, 높이가 102cm인 사다리꼴이고 가운데 석주는 위쪽과 아래쪽 폭이 50cm, 높이가 115cm로 일정한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석주의 길이가 짧을 경우 가석과의 틈을 판석으로 끼워 상부에서의 하중을 하부까지 무리 없이 전달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3개의 석주 위에는 멍에(교대석)가 좌·우로 놓였는데 그 형태는 바깥쪽 높이가 48cm, 안쪽 높이가 23cm로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갈수록 점점 단면적이 작아진다. 이러한 형태로 인해 가운데 석주가 바깥쪽 석주보다 높이가 13cm 커져있다. 가석 위에는 양쪽 측면에는 L자형, 가운데는 ㅁ자형 장귀틀이 놓여 있으며 장귀틀 위에는 폭 45~55cm, 길이 155cm 크기의 청판돌이 1구간에 5~6개, 2열로 깔려 있다. 석축과 석주까지의 거리는 291cm로 실측 할 수 있었으나 석주의 간격은 시굴부분이 협소하여 실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석축과 석주의 구조형태로써 석주의 간격을 추정하여 보면 석축과 석주간의 청판돌이 정확히 5개로 맞아 떨어지는 것으로 보아 석주와 석주의 간격은 291cm로 추정된다. 
   남석교의 북단부과 남단부 시작부분을 발굴 조사하여 본 결과 남석교는 3행 26열의 석주로 총 길이는 80.85m로 확인되었다. 남석교의 평면은 현 도로선과 거의 일치하고 있으며, 단면은 청판돌의 위치가 현재 지면으로부터 북단부 65cm, 남단부 165cm 깊이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 북단부에서 남단부로 갈수록 점점 깊이 매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남석교의 매몰 경위 및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1923년 무심천 개수공사 때 매몰되었다고 하는 증언이 있으나, 여러 문헌기록과 신문기사들로 보아 석교동 일대의 매립공사는 1930년대 초부터 이루어졌던 것이며, 남석교도 이와 때를 같이하여 매몰되기 시작하였다고 생각된다. 1936년 동아일보에는 ‘2천년 역사를 가진 청주 남석교의 비운’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는데, 부제로는 ‘길이 35청이나 되는 3층 다리, 시가지 확장으로 희생’이라 하였다. 그리고 기사 내용은 ‘청주지방의 명승고적의 하나인 청주 남교(南橋)는 청주시내에 있는데 거금 1천9백10년 전 신라시대에 건설되었다 한다. 이 다리는 청주 무심천 구류(無心川 舊流)에 가설된 것으로 장이 3간, 폭이 5척이 되는 거대한 석재로 장이 33간이나 되는 3층의 대석교라 하는데 실로 조선 유일의 공예를 역연히 표현하고 있다 한다. 여차히 거대한 석재로써 전기 석교를 가설한 역사를 보건데 청주는 행주형(行舟形)이라 하여 청주 짐대(철관으로 30개를 쌓아 하늘로 솟게 한 것)와 아울러 당시 승려들이 가설한 것이라 하는데 가설 당시에는 3층이나 되던 것이 장구한 세월을 모래에 묻혀 최근까지는 겨우 1층만 지상에 남아 있다가 금번 시가지 확장에 따라 다음 사진과 같이 전부 뒤덮어버려 이 역사적 유물이 흔적도 없이 될 것이라 한다.’고 자세히 적었다. 1936년 무심천 제방을 옮겨 축조하면서 남석교가 땅에 매몰되어 사라진 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이로써 무심천은 지상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남석교 법수 견상(청주대박물관)



   발굴조사를 마치고 청주시에 제출한 보고서에 몇 가지의 복원방안을 제시하였다. 남석교의 복원에 대한 타당성 검토는 현재 지하에 매몰된 석교를 전면적으로 노출시켜 원위치에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당연히 최선의 방법이다. 제시한 방안은 원위치 해체복원과 주변정비 방안과 함께 원위치에 남석교 자체만을 해체 복원하는 방안, 무심천에 이전 복원하는 방안, 무심천에 남석교를 재현하여 신설하는 방안, 시뮬레이션 복원 방안, 모형 복원 방안 등 여섯 가지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각 방안마다 그 가능성과 소요예산, 문제점 등을 상세히 검토하고 시장 조사를 하여 보고서에 수록하였다. 용역은 용역일 뿐인가. 이후 설치된 아케이드에 남석교의 옛 사진 몇 장 붙여 놓은 것 외에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남석교는 다시 관심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남석교는 현재까지 남아있는 우리나라의 돌다리 중에서 규모와 보존상태가 단연 으뜸가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의 교량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귀중한 문화유산이기도 한 남석교가 아직도 하루에도 수많은 인파가 밟고 다니는 재래시장의 차가운 아스팔트길 밑에 묻혀 신음하고 있는 기막힌 현실이 너무 부끄러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생각할 때마다 긴 한숨과 함께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남석교 복원도(남석교 복원기본구상 연구용역 보고서)



   우리나라에는 많은 돌다리가 있다. 궁궐이나 사찰에 놓인 돌다리를 비롯하여 서울 중랑천에 놓인 살곳이다리와 충북 진천의 농다리, 그리고 전남 함평의 고막다리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명소가 되었다. 남석교를 복원하자는 움직임은 70년대부터 있었고, 1989년 KBS의 특별방송 후 한동안 여론이 일어난 데 이어 발굴조사로 현실화되는가 싶었는데 육거리시장 상인들의 반발로 아직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들을 제외한 모든 청주시민들은 아직도 남석교의 복원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남석교는 청주의 명물로 옛날 서원팔경의 하나였다. 정월 대보름날에는 자신의 나이만큼 다리를 건너는 답교놀이가 행하여졌던 추억의 장소였다. 남석교를 볼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고자 정월 대보름날에 육거리시장 입구에 남석교 모형다리를 만들어놓고 많은 시민이 모인 가운데 답교놀이를 재현해 보기도 하였다. 남석교 복원을 기원하는 의미도 있었는데, 최근에는 이마저도 볼 수 없다. 남석교는 지금은 볼 수 없으나 자타가 공인하는 청주의 대표적인 문화재임에 틀림없다. 문화도시임을 자랑하는 청주의 자존심을 걸고 지혜를 모아 청주의 명물로 재탄생시켜야 할 것이다. 반드시 다시 찾아야 할 청주의 보물이기 때문이다.